본문 바로가기

스크랩

대합실 인생





기차를 기다리며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표정이 별반 없다. 환하게 들떠있던 연인들도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도 대합실에 들어서면 들떴던 표정은 점점 줄어들면서 무심결에 기다릴 준비를 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줄어들 표정마저 없이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눈동자를 바쁘게 돌리면서 기차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기차를 기다린다. 
기다림, 기다리고 싶지 않아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인생살이고 기다리다 가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던 모태로부터의 기다림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속이다. 그러니 기다리는 데에는 이골이 난 선수들이 사람들이다. 
지나간 삶을 돌아보면서 과연 인생의 주제가 무엇이었던가를 가늠해 본다면 아마도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무엇 하나 기다리지 않은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 기다리고 아침밥 먹고 나면 출근길의 차편을 기다리고 출근하면 일감 기다리고 일 끝내기를 기다린다. 
공항 대합실에서 올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비행기 안의 승객들, 집에서는 먼 길 오신 분을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기다림, 기다림이 줄줄이 기다리며 줄을 섰다.
현대에 와서는 의학도 발달되고 음식도 좋아져서 수명이 길어졌다. 수명만 길어진 것이 아니라 세심하게 건강요법을 지켜간다면 건강을 잘 지키며 온전하게 살 수도 있다. 수명이 길어진데 대하여서는 무척 고마운 생각이 들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은 그만큼 더 기다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기다림의 연장이다.
인생은 대합실, 목숨은 기다리는 행위의 연속이다. 인생 팔십, 아니 백살로 쳐도 기다리는 시간을 빼고 나면 뭐가 있을까? 기다림에 매달려 가는 것이 삶인 것을. 병들어 누워있는 자 완치를 기다리고 배고픈 자 양식을 기다린다. 메마른 자 사랑을 기다리고, 꿈이 파괴된 자 재건의 시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대상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말벗도 별로 없이 몸으로 수고하며 재정적으로 성공하기를 기다리는 소규모 장사의 한인들. 아이들 학교에 보내놓고 졸업하기를 기다리는 이민 부모들. 기다려지는 좋은 일은 사뭇 늦게 오고 기다리기 싫은 지출의 날은 무척이나 빨리 오는 이민의 생활. 기다리는 일로 너의 인생도 가고 나의 인생도 간다. 
노년에는 화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이 보인다고 한다. 초조하고 처절한 마지막의 기다림. 천국이나 극락도 꺼져 가는 숨을 몰아쉬면서 기다려야 갈 수 있는 인생. 일생이 기다림으로 시작하여 기다림으로 끝이 난다. 인생은 대합실, 우리는 대합실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지만 무엇을 기다릴까. 선별작업에 꿈을 얹는다면 그나마 기다리는 동안이 아련한 정감으로 무지개가 될 것 아니겠는가.        


김윤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