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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석채 사임과 민영화의 그늘]통신 공룡을 5년 동안 “들었다 놨다”

2013 11/19주간경향 1051호

 

“회사를 살리는 것이 내 의무이기에 회사가 마비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아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정을 내렸다.”(11월 3일 이석채 KT 회장이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 중)

2009년 3월 회장에 취임하고,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놓은 이석채 KT 회장이 결국 물러난다.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 회장이 퇴진의사를 표명한 이후 이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검찰 수사 중에 임직원 급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정·관계 금품로비 의혹 등까지 번지고 있다. 이석채 회장의 퇴진을 요구해왔던 참여연대와 KT새노조 인사의 전화기에는 ‘이 회장에 대해 제보할 것이 있다’는 문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한때 ‘한국 이동통신 시장에 큰 변혁을 가져온 혁신의 아이콘’ 소리를 듣기도 한 이 회장이었지만, 지금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던 CEO’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석채 회장이 KT를 이끌었던 4년 8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월 29일 이석채 KT 회장이 아프리카 르완다 키갈리의 세레나호텔에서 열린 ‘아프리카 혁신 정상회의 (TAS)’에 참석한 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기자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KT에 다니는 40대 사내가 시장통에 있는 한 국밥집에 들어간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나 찾아오는 국밥집에 사내 또래의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곳에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켜 사내는 혼자 점심을 먹는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사내는 늘 혼자서 밥을 먹었다.

KT는 과천에 살던 사내를 전남 고흥으로 발령을 냈다. 아내와 아이 둘을 놔두고 홀로 고흥에 내려와야만 했다. 그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밥 한 번 같이 먹자거나 소주 한 잔 하자는 이야기를 그에게 건네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그는 늘 혼자였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혼자서 소주를 들이켰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고, 일요일 저녁에 고흥에 내려오는 생활을 4년이나 해야 했다.

자존감 무너뜨린 ‘인력퇴출 프로그램’
1999년 한국통신공사, 현재의 KT에 입사했던 손모씨의 이야기다. 노조활동을 하고, 경영진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였다. 회사에서는 그를 쫓아내기 위해 먼 곳으로 보냈다. 그곳 동료는 손씨를 도와주면 피해를 당하기 때문에 그를 멀리했다.

손씨는 “아무리 직장생활이 험악해도 2~3개월이면 동료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선 같이 술을 먹자는 이야기를 나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서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동료가 말을 안 걸어주니까 사람이 무력해지고 자존감이 극단적으로 무너졌다. 술이 없으면 분노감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손씨뿐만이 아니다. 노조활동을 했던 이들은 집을 떠나 여수의 한 섬으로, 가평으로, 동두천으로 홀로 떠나야만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왕따였고, 팀장은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 갖가지 트집을 잡았다. 이석채 KT 회장 시절에도 운영된 ‘불법 인력퇴출 프로그램’(CP) 때문이다.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끔 하는 비인간적인 제도였다.

KT가 작성한 퇴출 대상자 명단 사유에는 ‘114 출신’, 민주노조활동가 모임인 ‘민주동지회 회원’ 등이 적혀 있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114 출신 여성에게 전신주에 올라가는 일에 발령을 내고, “전신주에 올라가는 일이 무섭다”는 그에게 전화국 국기 게양대에 홀로 매달리도록 지시한 일도 있었다.

KT 노동인권센터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8월 말까지 KT 재직 중 사망자, 재직 중 자살자, 퇴직 뒤 자살자, 퇴직 뒤 사망자 등을 합하면 188명이나 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김미례씨는 <산다>라는 다큐를 통해 CP가 빚어낸 쓸쓸한 풍경을 담아냈다. 손씨는 4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얼마 전 경기도 쪽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손씨는 김 감독에게 “매일 저녁 집에 갈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는 말을 전했다.

김 감독은 2년 동안 이들의 삶을 촬영하는 것이 힘겨웠다. 김 감독은 “민영화 과정에서 5000여명이 구조조정을 당하고, 이 회장 시절 6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희망퇴직을 했다. KT에 있는 사람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다”며 “촬영을 하면서 KT가 사람의 인간성을 이렇게 망가뜨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KT새노조가 아무리 이석채 회장에 대해 비판을 해도 내부에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여러 수장이 거쳐 갔지만, 이석채 회장은 독특한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다수의 수장들은 조용한 행보를 보여줬다. 임기 동안 많은 급여를 받고 아무 탈 없이 지내면 되는 자리로 생각했던 것이다.

2012년 12월 현재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6.8%)이다. 자사주 비율이 6.7%, 우리사주조합이 1.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이 47.6%, 국내 주주가 37.8%의 주식을 가지고 있어 KT를 ‘주인 없는 회사’라고 부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석채 회장이 전임 수장과는 다르게 KT의 오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주인 없는 회사인데도 마치 주인이 된 것처럼 행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석채 회장 시절 퇴사한 모 임원도 “이 회장은 KT의 이건희 회장이 되고 싶었던 것”이라며 “주인 없는 회사에서 이건희가 되려고 하니까 자기 사람 심고, 정치인을 방패막이로 삼았던 것 아니냐. 그것이 이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10월 29일 노동·시민단체 대표들이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이석채 KT 회장의 퇴진과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KT 내에서 이 회장에 반기를 드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CP를 활용해 반기를 드는 이들은 철저하게 고립시켜 회사를 나가게 만들었다. 남은 사람들은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들로 인의 장막도 쳤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최민희 의원(민주당)은 소위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KT 전·현직 인사 3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대본부장을 지냈던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KT 경영고문)과 공보단장을 지낸 김병호 전 의원(KT 경영고문), 국민행복기금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병원 사외이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김은혜 전무와 이춘호 EBS 이사장(KT 사외이사) 등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영입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자녀는 KT 법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KT의 이건희가 되고 싶었을 것”
최 의원은 “이석채 회장은 낙하산용 수십 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천명의 직원을 정리했고, 정권은 그 직원들의 자리를 뺏어 돈과 자리 보존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KT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은 “이사회조차 동창으로 구성하고, 정권의 실세라면 무턱대고 자문이나 고문을 맡기는 비정상적인 기업지배구조를 만들었다”면서 “이 결과 통신비는 치솟고, 노동자는 죽어가고, 마침내 기업 지속성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 지경에 왔다”고 말했다.

지난 7월 KT는 사상 최초로 14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 3월 이 회장은 취임 이후 굵직굵직한 이슈를 발표했다. 취임 3일 만에 발표한 KT와 KTF의 합병으로 KT를 거대 유무선 통신회사로 만들었다. 이 덕분에 이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경영자라는 평을 들었다. 그해 11월 아이폰 3GS 도입으로 이 회장은 혁신의 대명사로 불렸다. 아이폰 도입은 한국 이동통신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음성통화 위주의 통신시장은 데이터 중심으로 변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12년 연임에 성공한 이 회장은 ‘탈통신’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90% 이상 점유를 하고 있는 유선전화 부문에서 매년 6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고,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도 둔화됐기 때문이다. 스카이라이프, 금호렌터카, BC카드 등을 인수했다. 이 회장 재임 시절 계열사가 30여개나 늘어났다.

하지만 탈통신 드라이브가 걸리고 다양한 M&A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KT새노조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32개의 기업 인수·합병과 분사 규모가 1조14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인수 기업들의 적자가 심각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점이다.

2011년 계열사로 편입된 빅 데이터 플랫폼 및 분석 솔루션 업체인 KT Cloudware에 KT는 213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2011년 40억원의 적자를 냈고, 2012년에는 8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티맥스소프트와 KT의 합작 법인으로 2010년 계열사로 편입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Innotz에 KT는 100억원을 투자했지만 2010년 12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 엔서스, KSDS, Ustream Korea 등도 적자를 내고 있는 인수기업으로 꼽힌다.

‘낙하산’으로 인의 장막 쳐 반기 차단
KT 관계자는 “비통신분야 영업이익 기여도가 상당히 높다. 영업이익 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 회장 시절 30개 계열사가 늘었는데, 20개 계열사가 적자다. 하지만 개수보다 전체 실적이 중요하다. 영업이익이 성장하고 있고, 1~2년 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해명했다.

이 회장이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도 의심스럽다는 목소리가 높다. KT는 2010년부터 2012년에 걸쳐 39개의 부동산을 매각했는데, 그 부동산을 10~15년 동안 임차해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흔히 말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 & Lease back)이다. 기업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동산을 매각하고, 장기간 임대를 하는 방식이다. KT새노조 자료에 따르면 3년 동안 9842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문제는 감정가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부동산을 매각하고, 높은 가격에 임대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높다는 점이다. KT 내부자료에 따르면 2012년 매각한 9개 부동산 중 감정가 대비 매각액이 낮은 것이 8건이었다.

2011년 매각한 20개 부동산 중에서 감정가보다 매각액이 낮은 경우도 19건이나 됐다. 2010년 매각한 부동산 10개 중 5개 역시 감정가보다 낮게 팔렸다. 이에 비해 임차 의무기간은 5~10년이고, 매년 임차료 인상률은 3~4%로 계약했다.

KT새노조 분석에 따르면 10~15년 후면 임차료가 매각금액을 상회하는 구조가 된다. 자산 매각에 따라 KT의 순이익은 높아졌지만, 시간이 흐르면 KT의 자산이 공중에 사라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와 전국언론노조는 이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KT 관계자는 “매각금액이 감정가의 75%라는 것은 회사 내부 보고서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감정가 대비 매각가 중에는 임차료 일부를 뺀 것이 있다. 정확하게는 감정가 대비 94% 정도”라며 “세일 앤드 리스백이 KT에 나쁘지 않다. 우리가 소유한 건물을 다른 용도로 쓰려면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명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참여연대는 KT를 상대로 많은 문제점을 밝혀냈다”며 “7대 경관 국제전화 투표 사기사건은 방통위에서 KT에 과태료를 물렸고, 이동통신 담합을 신고해 공정위가 KT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KT의 자산을 손해보면서 판 것이 배임이라고 검찰에 고발해 검찰이 두 번이나 압수수색을 했지 않나.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보다 더 노골적으로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KT의 황당한 무궁화 위성 헐값 판매

10월 3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서 주목을 끄는 이슈가 터져나왔다. 유승희 의원(민주당)이 KT가 국가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무궁화위성 2·3호를 홍콩 기업 ABS에 헐값으로 매각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무궁화위성은 방송용 중계기와 통신용 중계기를 탑재하고 있는 정지궤도 위성이다. 산간오지에서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TV를 볼 수 있는 것은 무궁화위성 덕분이다.

1999년 9월 5일 우리나라 세 번째 통신·방송용 상업위성인 무궁화위성 3호가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위성 발사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 경향신문사


1500억원이 투자된 무궁화위성 2호는 2010년 1월 40억4000만원에 매각됐고, 3000억원 이상 비용이 들어간 무궁화위성 3호는 2011년 9월 5억3000만원에 팔렸다. KT는 “설계수명이 종료돼 폐기 예정 위성을 통한 부가수익 창출을 위해 매각했다”는 공식 답변자료를 의원실에 제출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KT의 위성 매각을 한국 정부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략물자 수출허가에 관계된 산업통상자원부, 중요한 전기통신설비 매각을 할 때 인가하게 되는 미래창조과학부도 국감에서 유 의원이 폭로하기 전까지 눈 뜬 장님처럼 있었다.

한국에서 상업용 위성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KT 한 곳뿐이다. 법적으로는 KT의 소유다. 다만 무궁화위성은 고도의 공공재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위성을 매각할 때는 ‘전기통신사업법’ ‘우주개발진흥법’ ‘전파법’ 등의 규제를 받도록 돼 있다.

유승희 의원은 “관련 부처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큰 과실이다. KT가 서류를 제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관리·감독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라며 “인공위성 관련 기술은 핵무기 발사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고도의 집약발전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각 나라가 특별관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위성연구본부장은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알 것”이라며 “무궁화 5·6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즉 유사시에 KT가 한 말처럼 2·3호기를 백업 위성으로 쓸 수 있느냐를 검증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이 사실을 보고받고 격노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11월 5일 미래부는 KT 위성사업 전담 자회사인 KT샛 임직원을 상대로 청문회를 열었다. 미래부는 KT 해명 검토 후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파법 위반이 확인되면 위성 주파수 회수까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무궁화위성 2·3호기를 백업용으로 둘 것이냐, 아니면 다른 용도로 할 것이냐를 고민하다 매각을 한 것”이라며 “무궁화위성 3호기가 2011년에 수명이 종료됐고, 그것 때문에 6호를 발사했다. 무궁화위성 2·3호기가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매각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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