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이념 초월한 역사교육 절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읽어보셨죠? 남과 북 어느쪽으로도 갈 수 없어 제3국을 선택했다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주인공. 지금 남과 북 모두에서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광복운동가들은 소설 '광장'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이에요."
지난 13일 충칭 광복군 제1지대 본부 터. 장규식 교수(중앙대 사학과)는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이념보다 광복과 해방을 간절히 원했던 중간파 광복운동가들은 진정 광복이 찾아온 뒤에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불운한 사람들"이라며 말을 꺼냈다. '위치엔 고속도로'가 개통돼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광복군터를 둘러본 뒤였다.
장교수는 "광복 후 남과 북이 갈라지며 이념대립이 심화되던 시점에 민족통일을 주장하며 극단적 이념대립을 경계했던 인물들은 결국 완고한 체제 안에서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잊혀졌고, 이들이 곳곳에 남긴 흔적들도 보호받기는커녕 방치된 채 사라져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남쪽의 경우 운암 김성숙 선생과 같은 좌파광복운동가들은 끊임없는 정권의 견제와 위협 속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북쪽에서는 민족주의 계열의 광복운동가들이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
장교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한국전쟁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이 끝나자 다른 체제의 이념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은 더욱 좁아졌고, 더욱 극단적인 이념성향이 선호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전쟁과 동시에 항일역사에서 완전히 소외된 이들 중도 좌·우파 광복투사들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분단의 가장 비극적인 희생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내 곳곳의 항일유적들도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않다"면서 "우리나라에서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유적지를 중국에서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광복 60주년을 맞은 지난 해에야 겨우 사회주의계열 광복운동가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면서 "좌우의 균형이 잡힌 역사관이 부재했던 것이 바로 좌파계열 광복운동가들을 뒤늦게 평가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장교수는 "좌우로 극단적으로 편향된 교육과 역사관은 결국 또다시 사회의 이념적 성숙을 가로막게 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장교수는 "우리가 이제야 뒤늦게 이들 좌파광복운동가의 자취를 되짚어보려 하지만 항일운동 당시로부터 60~7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남긴 사료와 유적을 발견하기는 많이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좌파항일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이 늦어진 만큼 지속적인 탐방과 조사활동이 필요하다"며 "이들 사료와 유적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정부측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이호준기자〉
원본 위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8141808561&code=210000&s_code=af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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