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문득 궁금해져서…찾아봄
4장 식민지 수탈경제의 실상
... 제1절 수탈경제의 야전사령부
조선은행과 보험회사
1911년 8월 15일 일제는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고쳤다. 이로써 조선은 완전히 일본의 통화권 안에 포함되었다. 조선은행은 조선의 산업을 예속시키기 위해 산업금융기관을 계통화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농공은행과 조선식산은행등의 설립이다.
1909년 착공되어 1912년 완공된 조선은행은 총독부 직속 금융기관으로, 수탈경제의 최정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은행권은 1917년 이후 만주에서도 통용되었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조선은행은 만주는 물론 몽고와 중국 화북지방에까지 영업망을 넓혔다. 제국주의 침략의 확대 과정에 발맞추어 성장해 간 전형적인 제국주의 금융기구였다.
우리 나라 최초의 보험회사는 1908년 2월에 설립된 동양화재보험주식회사였다.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 일본의 보험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해오기 시작하였는데,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 보험회사는 1932년을 기준으로 생명보험회사 22개, 손해 보험회사 27개에 이르렀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보험업계는 악착같은 수법을 동원하여 조선금융에 대한 지배권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한국인 보험회사로는 1922년 10월에 설치된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가 있었다.
초대사장은 민병석(閔丙奭)이었다.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조선은행 발행 화폐
동일은행
1931년 한일은행과 호서은행을 합병하여 만든 민족계 은행이다. 운영에는 민대식(閔大植) 등 민씨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1943년 일제는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을 합병하여 조흥은행을 만들었다. 이로써 조선인 은행은 완전히 없어졌다.
농공은행 본점 영업실(1920년대)
일본생명보험회사 사옥(1922)
폭탄 세례를 받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의 대표적인 경제 수탈기구였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대부와 토지 약탈과정에서 민중의 원성 대상이 되었다.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는 조선식산은행에 폭탄 1개를 던졌으나 불발되자, 바로 큰길을 건너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로 들어가 일본인 직원 수 명을 사살하고 폭탄을 투척했다 그러나 이 폭탄 또한 불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과 총격적인을 벌인 나석주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가슴에 세 발의 탄환을 쏘아 장렬하게 자결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일본의 국책회사로 서울에 정식 설립된 것은 1908년 12월 30일이었다. 지금의 메트로미도파 자리에서 조그맣게 본점을 차린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그 후 을지로 2가 지금의외환은행 본점자리로 옮겼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본점이 새로 들어서면서 이 건물은 남산의 통감부 건물과 같은 구조, 같은 크기로 규모가 커졌다. 1917년 10월 본점을 동경으로 옮기고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그 지점이 되었다.
조선식산은행
1918년 옛 농공은행을 흡수해 설립된 조선식산은행은 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현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자리)
증권
증권은 자본주의 꽃이다. 우리 나라에서 유가증권이 처음 발행된 것은 1899년 대한천일은행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일정한 주식 거래장소는 없었다. 조직적인 증권거래의 제도가 확립된 것은 1931년 조선취인소령(朝鮮取引所令)에 의해 조선취인소가 발족되면서부터이다. 사진의 경성취인소와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은 서울의 증권회사 모습이다.
당시 조선인으로 은행이나 증권거래소에 다닌다면 최고의 엘리트 직업인으로 손꼽혔다. 특히 대출을 담당하는 금융조합 같은데 일하면 지방에서는 유지 대접을 받았다.
조선취인소(朝鮮取引所)
경성취인소 입회
서민을 울린 전당포
물건 등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는 예로부터 있어 왔으나, 근대적 전당포의 등장은 개항 이후이다. 일제 때의 전당포는 불쌍한 서민들의 자본을 훑어가는 곳으로서, 서민들을 울리는 사금고 역할을 하였다. 이에 일제는 빈민구제사업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1929년에 공익(公益) 전당포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전당포
전당포
전당포
상공업을 통제한 경성상업회의소와 상공장려관
경성상업회의소는 서울의 상업과 공업을 장려하기 위한 기관으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서울 상공업계의 통제기관으로 기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산업과 상공업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상공장려관은 조선총독부 산하기관으로 조선인 경성상업회의소와 일본인 상업회의소를 합하여 만들었다. 이 기관 또한 상공업계의 통제기관으로, 서울은 물론 조선의 산업과 상공업을 주도하였다. 상공장려관은 원래 상품진열관으로 개관하였으나, 1929년에 보수·확장하여 총독부 상공장려관으로 개칭하였다. 이곳에 진열되는 상품은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것 뿐만 아니라 만주와 일본의 상품도 진열되었다.
경성상업회의소
상공장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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