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100돌인 29일을 앞두고, 항일무쟁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였던 '봉오동·청산리 대첩'과 관련된 희귀 사진 수십장이 발굴됐다.
간도 사료 전문가인 김재홍씨는 27일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당시 독립군에게 섬멸당한 일본군의 주력부대였던 함경도 나남19사단 예하 보병 75연대의 사진첩을 <한겨레>에 공개했다. 김씨는 "이 사진첩은 1920년대 보병 75연대에서 복무하던 한 일본군의 제대를 기념해 제작된 것으로, 1990년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재미동포 언론인 맹우열씨가 그 일본인 후손에게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진첩에 실려 있는 한 독립군의 처형 장면 사진에는 '대정 10년(1921) 7월13일 오전 9시'라는 날짜와 '하얼빈'이라는 지명 등이 뚜렷하게 적혀 있고, '마적'이란 이름으로 일본군에 의해 무차별 살상당한 독립군과 한인 양민들의 떼주검 장면이 전리품처럼 소개돼 있다.
함경북도 회령에 주둔한 보병 75연대는 1920년 6월 봉오동에 이어 10월 청산리에서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에게 연패한 뒤 명동촌을 비롯한 만주 일대에서 한인 수만명을 수개월에 걸쳐 보복살상한 '경신참변'을 주도한 부대다.
사진첩에는 또 봉오동 전투 직전에 두만경변 삼둔자 싸움에서 독립군에게 대패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실제 모습이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군 남양수비대의 사진도 실려 있다. 이밖에 일본군의 전투 훈련 장면, 회령 시내에서 일본군들이 민속놀이를 즐기는 모습 등 당시 일본군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료들도 들어 있다.
사진첩을 감수한 독립운동사연구소 이동언 박사는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비롯한 1920년대 항일투쟁 사료가 대부분 광복 이후 채록한 우리 독립군과 그 후손들의 증언에 바탕한 연구서 위주였다면, 이 사진첩은 적군인 일본군이 당시에 남긴 실증적인 기록이란 점에서 사료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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