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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7)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ㆍ전자기장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기본적으로 패러데이의 원리에 기반을 뒀다. 자석 주변에 철가루를 뿌리면 주위에 둥그스름하게 모이는 것처럼 패러데이는 전기도 이런 성질이 있다고 보았다. 두꺼운 절연체로 전선을 감싸는 것은 외부로 빠져나가는 장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기본적으로 패러데이의 원리에 기반을 뒀다. 자석 주변에 철가루를 뿌리면 주위에 둥그스름하게 모이는 것처럼 패러데이는 전기도 이런 성질이 있다고 보았다. 두꺼운 절연체로 전선을 감싸는 것은 외부로 빠져나가는 장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빈 공간은 장(場)으로 충만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본이 ‘물’이라고 했다.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고민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물, 공기, 불, 흙), 피타고라스는 심지어 ‘수(數)’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답을 안다. 바로 ‘원자’다. 만물은 원자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우리 몸, 자동차, 태양과 지구,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물체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물리에서는 이것을 ‘운동’이라 한다. 운동은 제멋대로 일어나는가, 아니면 법칙을 따르는가? 

17세기, 뉴턴은 운동의 법칙을 찾아냈다. 법칙을 기술할 수학이 존재하지 않아 새로운 수학을 만들기까지 했다. 바로 수험생의 적(敵), 미적분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등속직선운동(일정한 속력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운동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속도가 변한다면 거기에는 뭔가 있다. 뉴턴은 그것을 ‘힘’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중력이 그런 힘이다. 만약 우주에 아무것도 없이 지구 하나만 덜렁 있다면 지구는 반드시 등속직선운동을 해야 한다. 실제로는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라는 힘 때문에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 존재하는 중력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까?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무려 1억5000만㎞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도 8분 이상 걸린다. 지구는 태양이 자신을 중력으로 당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라, 저기 태양이 있네. 태양에게 끌려가야지~” 지구가 생명체라면 모를까 이건 분명 아니다. 중력의 전달은 뉴턴에게도 어려운 문제였다. 뉴턴은 그냥 지구와 태양은 공간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힘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소위 ‘원격작용’이라 불리는 거다. 이 문제의 해답에 대한 단서는 “중력 말고 다른 종류의 힘도 있나?” 하는 질문에서 나오게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4가지 힘 

우주에는 4종류의 힘이 존재한다.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 그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핵력을 느끼려면 태양을 보면 된다. 태양이 빛을 내는 이유는 핵력과 관련된 핵융합 반응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에 가봐도 핵력의 위력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핵력은 방사능과 관련된 힘이다. 함부로 가지고 놀았다가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당하거나 미국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중력은 빵을 떨어뜨리면 항상 잼 바른 면이 아래로 향한다는 머피의 법칙과 관련된 힘이다. 정확히는 빵을 낙하시키는 힘이다. 모든 물체들 사이에는 중력이 작용하지만, 지구상에서는 지구의 중력이 워낙 커서 다른 물체들의 중력은 있으나 마나다. 당신이 빵을 들고 있다가 손을 놓으면, 놓은 그 찰나의 순간 빵은 정지 상태에 있다. 정지 상태는 속도가 0인 등속운동이다. 따라서 운동법칙에 따르면 그 상태를 유지해도 무방하다. 실제 우리 주위의 많은 물체들이 그 자리에 정지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곧 빵은 바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뉴턴이 옳다면 여기에는 힘이 있어야 한다. 바로 중력이다! 물리는 운동을 이런 식으로 분석한다. 

지구상에서 중력은 낙하를 일으킬 뿐이다. 그렇다면 낙하를 제외한 모든 운동의 변화는 4가지 중에 남은 힘인 전자기력이 일으킨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바람이 불면 정지해 있던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도 전자기력 때문인가? 손가락으로 지우개를 밀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도 전자기력이라고? 손가락으로 지우개를 밀 때, 방사능 걱정할 사람은 없으니 핵력은 아니다. 내가 지우개를 미는 것은 중력과는 관련 없다. 우주에 힘이 4개뿐이라고 했으니, 전자기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제5의 힘을 찾은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전자기력 때문이다. 신문 또는 스마트폰에서 출발한 전자기파, 즉 빛이 당신의 눈에 도달한다. 눈의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빛 때문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화학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전기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전자기력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이 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도 뇌 속의 전기적 작용, 즉 전자기력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전자기력이다. 우리 주변 대부분의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전기가 예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기학’을 두 학기 수강해야 물리학과를 졸업할 수 있다. 

■전자기력 

중력을 일으키는 것은 입자의 ‘질량’이다. 전자기력은 ‘전하’가 일으킨다. 겨울철, 문고리를 잡을 때 정전기의 충격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전하의 존재를 경험했다. 일상적으로 전하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전하에는 양(+)과 음(-)의 두 종류가 있는데, 대개 이들이 같은 양만큼 있어 전하가 없는 중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음(-)의 질량은 존재하지 않기에 질량은 상쇄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중력을 숨길 방법은 없다.

힘은 두 입자 사이에 작용한다. 입자가 혼자 있을 때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힘은 상호관계다.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는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 성격이 얼마나 일치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힘에서는 입자 사이의 거리가 중요하다. 놀랍게도 중력과 전자기력의 크기는 모두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거리가 2배, 3배로 멀어지면 힘의 크기는 4배, 9배로 작아진다. 우리가 멀리 있는 블랙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중력과 전자기력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할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중력이라고 답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이 질문은 잘못된 거다.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때는 가정이 필요하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도 원자핵과 전자로 나뉠 수 있는데, 전자는 더 이상 나뉘지 않는 기본입자의 하나다. 전자는 전하와 질량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중력과 전자기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두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과 전기력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전기력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훨씬’이라는 부사는 부적절하다. 전기력이 4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배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를 연구할 때 중력은 완전히 무시된다.

이처럼 전자기력은 강하다. 이 때문에 전하를 보는 일은 흔치 않다. 어딘가 양이나 음전하가 존재하면 바로 반대의 전하를 끌어당겨 전하량이 0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력이 먼저 발견되고, 전자기력은 19세기에나 제대로 알려진다. 전자기력은 물질 내부에 꽁꽁 숨어 있었던 거다. 우리는 보통 전기력과 자기력을 구분하여 말하지만 물리학자들은 그냥 전자기력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패러데이의 장(場) 

두 전하 사이에 존재하는 전자기력은 어떻게 전달되는 걸까? 뉴턴이 살아 있었다면 중력과 마찬가지로 ‘원격작용’이라 답했을 것이다. 공간을 넘어 단번에 전달된다는 뜻이다. 실제 당시 대부분 학자들은 이런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전자기의 슈퍼스타 마이클 패러데이가 등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 없이 살 수 없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기본적으로 패러데이의 원리에 기반을 둔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패러데이는 다윈과 더불어 19세기 최고의 과학자다. 

자석 주위에 철가루를 뿌리면 특정한 패턴을 이루어 정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상에서 나침반이 작동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철가루 하나하나가 작은 나침반인 셈이다. 나침반을 들고 남극에서 북극으로 이동하며 나침반 바늘의 방향을 기록하여 연결하면, 남극에서 출발하여 북극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곡선을 얻을 수 있다. 아마도 자기력은 이 선을 따라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패러데이는 이것을 자기력선, 혹은 자기장(場)이라 불렀다. 즉, 자석 주위의 공간은 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원격작용의 입장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 패러데이는 다행히도(?) 정식 교육을 거의 받은 적 없는 성실한 실험 과학자였다. 그래서 기존의 학설에 덜 얽매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가 뉴턴이다. 패러데이는 어떻게 감히 뉴턴의 생각을 거부할 용기를 갖게 된 걸까.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패러데이의 종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수교파인 샌더만파 교인이었는데, 신성(神性)은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교리를 가졌다고 한다. 즉, 공간은 텅 비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뉴턴의 알려지지 않은 편지의 내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에서 말년의 뉴턴은 원격작용에 대해 그런 생각은 바보 같으며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다. 뉴턴도 원격작용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가방끈이 짧은 패러데이의 주장은 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단 한 사람, 제임스 맥스웰 빼고 말이다. 1873년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제안한 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기술하는 방정식들을 구했다. 맥스웰의 논문을 보면 그가 장을 이해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간에 가상의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형을 도입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전하나 자석 주위에 보이지 않는 전기장, 자기장이 충만해 있다는 것은 맥스웰도 쉽게 설명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맥스웰의 이론도 그가 죽을 때까지 가설로서만 다루어진다. 공간에 존재한다는 장을 누군가 실험으로 확실히 보여줘야 했다. 물리학자들이 전자기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전기는 이미 산업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1844년 워싱턴과 볼티모어를 잇는 첫 번째 상업 전보선이 개통되었고, 1858년에는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대서양 전신선 개설공사가 시작되었다. 전신이란 전선을 연결하여 전류만 통했다 끊었다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전선을 개설하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패러데이의 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도선을 가급적 얇은 절연체로 감싸고 외부를 튼튼히 금속으로 보호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장을 고려하면 도선 주위를 우선 두꺼운 절연재로 감싸야 했다. 외부로 빠져나가는 장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패러데이의 주장이 학계의 정설이 아니었기에 첫 번째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도선을 연결했지만 대서양을 지나며 신호가 모두 외부로 새어나가 거의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앞서 말한 장을 고려한 방법으로 1866년 대서양 횡단 통신이 성공한다.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7)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실전화기는 실의 진동으로 소리를 전달한다. 공간이 전자기장으로 가득하다면 장을 진동시켜 무언가 전달할 수도 있을 거다. 맥스웰이 전자기장의 진동을 기술하는 수식을 구하고보니, 놀랍게도 이 진동이 바로 ‘빛’이었다. 우리가 보는 빛은 전자기장이 특정한 진동수로 진동하는 전자기파의 일종에 불과하다. 장이라는 아이디어가 뜻하지 않게 “빛은 무엇인가?”라는 오랜 난제의 해답까지 준 것이다.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으로 입증한다. 휴대폰의 무선통신은 바로 이 헤르츠의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인리히 헤르츠는 1887년 전자기파를 실험으로 입증했다. 휴대폰의 무선통신은 이 헤르츠의 전자기파를 이용한 것이다.

하인리히 헤르츠는 1887년 전자기파를 실험으로 입증했다. 휴대폰의 무선통신은 이 헤르츠의 전자기파를 이용한 것이다. 

전하가 있으면 그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장이 펼쳐진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에는 중력장이 펼쳐진다. 전기장을 흔들면 전자기파가 생기듯, 중력장을 흔들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7)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1, 2>(공저), <과학하고 앉아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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