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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간도의 한국인] 김재홍씨 수집자료 단독 공개 간도의 한국인] 김재홍씨 수집자료 단독 공개 [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독립운동 씨앗' 뿌리던 산천…그 숨결 아직도 들리는 듯 겨레의 꿈 키우던 광야…그때처럼 윤동주의 별도 뜬다네 » 명동촌 설립자인 김약연 선생의 증손자 김재홍씨 "지금도 용정의 규암(김약연) 선생 댁 마당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선하다." 북한학 연구의 석학으로 꼽히는 서대숙(UCLA 석좌교수) 박사는 1931년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46년 남한으로 내려올 때까지 간도의 용정에서 자랐다. 간도 일대를 돌며 개척교회 활동을 펼친 부친 서창희 목사는 문익환·동환 형제의 부친인 문재린 목사와 용정 중앙교회에서 함께 시무하기도 했다. 그는 한-중 수교 이전인 87년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장으로서 중국을 초청방문했다. 그때 공산당 정부는 그를 .. 더보기
봉오동·청산리 대첩’ 관련 희귀사진 봉오동·청산리 대첩' 관련 희귀사진 발굴 간도사료 전문가 김재홍씨, 일본 보병 75연대 사진첩 공개 독립군 살상장면 찍어 '전리품'처럼 일본군 제대 기념으로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100돌인 29일을 앞두고, 항일무쟁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였던 '봉오동·청산리 대첩'과 관련된 희귀 사진 수십장이 발굴됐다. 간도 사료 전문가인 김재홍씨는 27일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당시 독립군에게 섬멸당한 일본군의 주력부대였던 함경도 나남19사단 예하 보병 75연대의 사진첩을 에 공개했다. 김씨는 "이 사진첩은 1920년대 보병 75연대에서 복무하던 한 일본군의 제대를 기념해 제작된 것으로, 1990년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재미동포 언론인 맹우열씨가 그 일본인 후손에게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더보기
친일은 지금도 계속된다 1910년 8월29일,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일제강점기 35년은 다른 식민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억압과 인권 유린이 심했다. 민족과 문화는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다. 그 뒤에는 늘 친일 조선인들이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점령한 지 100년, 친일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을까. 아직 보수 우파들이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일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 현실이다. 지난 100년간 '친일'이 우리 역사와 사회를 어떻게 헤집고 할퀴었는지 짚어본다. 1910년 8월22일 어전회의에서 순종은 한국에 대한 통치권을 일본 황제에게 넘겨주겠다고 밝힌다. 이완용 총리대신은 곧바로 데라우치 총독을 만나 합방조약에 서명했다. "한국 전체에 대한 일본의 통치권을 완전히 일본에 넘겨준다.".. 더보기
항일 무장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홍성촌(紅星村), 옛 지명은 추가가로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한 이회영 6형제 일가가 정착한 곳이다. 이정표에도 없는 마을, 21일 오전 현지 가이드가 다섯 번이나 차를 세우고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 홍성촌(紅星村). 이 마을의 옛 이름은 추가가(鄒家街·쩌우자)로,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등 이회영 일가 6형제 가족과 권속 60여 명은 1910년 12월 서울을 출발, 12월 30일 압록강을 건너, 단둥을 거쳐 1911년 2월 초순 이곳에 도착했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정승만 9명을 내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리던 명문세가 형제들이 서울 명동의 땅을 비롯한 재산을 급히 처분.. 더보기
[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이념에 물린 반쪽 광복운동史 [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이념에 물린 반쪽 광복운동史 지난 12일 중국 허베이성 한단(邯鄲)의 진기로예 열사릉원. 이곳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좌파계열 독립운동가 진광화·윤세주 열사의 묘가 모셔져 있었다. 두 열사는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다 1942년 6월 중국 태항산에서 공산당과 함께 일본군에 대항한 '마전(痲田)반격전'에서 전사한 투사들이다. 11박12일의 중국 화북지역 항일투쟁지 답사일정 중 이 능원을 찾은 단원들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을 위해 싸운 이들을 왜 기려야 합니까." 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후손은 답사 주최측의 두 열사 추모행사에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단원은 "옛날 같았으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을 일"이라고도 했다. 이념대립의 찌꺼기는 이렇듯 이국의.. 더보기
[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海平 이재현 열사는 누구 [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海平 이재현 열사는 누구 해평 이재현 열사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동시에 독립운동을 위해 김구 선생과 함께 상하이로 간 부친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3살이던 그에게 독립운동은 운명과도 같았다. 그의 호 해평(海平)은 김구 선생이 지어줬다. 김구 선생은 젊은 군인 이재현 열사를 총애했다. 해평 선생은 1939년 11월, 23살의 나이로 30여명의 무정부주의 계열 청년들과 함께 충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이하 전지공작대)를 창설했다. 전지공작대는 결성과정에서 김구 선생의 승인을 받았지만 임시정부와는 별도의 독자적 조직체였다. 그는 일본군 37사단과 맞서 정보를 빼내고 한국 국적의 일본군 사병을 포섭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중국인으로 위장하는 .. 더보기
[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이념 초월한 역사교육 절실” [항일무장투쟁 발자취를 따라서] "이념 초월한 역사교육 절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읽어보셨죠? 남과 북 어느쪽으로도 갈 수 없어 제3국을 선택했다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주인공. 지금 남과 북 모두에서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광복운동가들은 소설 '광장'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이에요." 지난 13일 충칭 광복군 제1지대 본부 터. 장규식 교수(중앙대 사학과)는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이념보다 광복과 해방을 간절히 원했던 중간파 광복운동가들은 진정 광복이 찾아온 뒤에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불운한 사람들"이라며 말을 꺼냈다. '위치엔 고속도로'가 개통돼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광복군터를 둘러본 뒤였다. 장교수는 "광복 후 남과 북이 갈라지며 이념대립이 심화되던 시점.. 더보기
[항일무장투쟁 발자취 따라서] 방치된 항일 유적들 경향신문 2006년 특집기사 [항일무장투쟁 발자취 따라서] 방치된 중국내 유적들l 입력 : 2006-08-13 18:39:45 역사는 과거와 오늘의 대화다. 기억하지 않고, 묻지 않는다면 역사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중국에서 펼쳐진 항일무장투쟁 역사도 우리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역사가 될 수 없다. 경향신문은 광복 61주년을 맞아 방치된 중국 내 항일투쟁 유적지 답사를 통해 묻혀가는 독립투사들의 조국혼을 되새기고자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와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가 각각 주최한 이번 답사에는 경향신문 취재팀 외에 독립투사 후손과 역사학자,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중국 젊은이들이 몸을 흔드는 디스코장으로 변한 훈련장, 폐허만 남은 숙소…. 빛나던 중국 내 항일 무장 투.. 더보기